사도신경 강해 (5)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사도신경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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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1. 역설적인 신앙 고백 : 고난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 강해 첫 시간에 얘기했듯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믿는 바를 정리하고,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분별력을 주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개인의 고백을 너머서 공동체의 고백을 향해야 한다는 신앙고백의 공공성을 말했었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신앙고백의 중요 목적 중 하나는 “세상 가운데 우리의 정체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가 바로 교회의 정체성, 정신이고 이것을 신앙고백으로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교회의 외부를 향한, 세상을 향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문서가 사도신경이고
사도신경은 우리 보편적인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거죠.
그러면 사도신경은 우리의 정체성을 세상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내주는 문서입니다.
그런데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초등학교 때나, 아니면 커서도 자기 소개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게 자신의 정체성을 얘기하는건데.
그때 이름과 나이 기본적인 신상을 얘기하고 취미, 관심사 이런 것들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자기 소개를 하던 중간에 갑자기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나 상처를 얘기한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보통은 그런 경우는 없죠. 상식적으로요.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 그 중요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서 중간에 예수님에 대한 상처를 얘기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그들이 믿는 예수가 받은 고난이 정체성이라고 세상에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어쩌면 수치일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당당히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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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예수님이 받으신 그 고난이 세상을 구원해낸 구속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의 성취의 사역에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생애 그 자체 : 고난
우리는 부활주일 전에 1주일을 고난주일로 정하고, 고난을 묵상하는 경건한 한 주를 보내기도 합니다.
고난 주간을 정해서 고난을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하신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고난’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고난을 묵상하려면 사실 한 주일 고난주간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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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만을 고난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성육하신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난"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승구 139p.
심지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할 때 죽음을 전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은 죽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정말 중요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 받으신 것이 똑같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에 대해서 사도신경이 어떻게 고백하는지, 예수님의 삶을 대표하는 단어인 고난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인간이 되셔서 받으신 고난
(1) 성육신 자체가 고난이심
예수님에게는 성육신 자체가 고난이셨습니다.
지난 주 성육신을 다루었지만 다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실 때는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감추시고 시간 속으로 오신 것부터 그분에게는 당하시는 고난이신거죠.
벌코프는 “만군의 주께서 죄의 형 태로 사신다는 것, 무죄하신 분이 날마다 죄 있는 사람들 사이 에서 사 신다는 것, 거룩하신 분이 죄로 저주받은 세상에서 사신다는 것” 자체 가 고난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출생은 영광을 감추신 비천한 출생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말에게 먹이를 주는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자리는 우리의 관점에서 영광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도 마 복음 8:20의 말씀처럼 머물 집이 없이 생활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20 NKRV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그 고난의 하이라이트, 극치는 바로 예수님의 생애 중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기 이전까지 예수님이 당하신 모욕과 멸시는 예수님의 당하신 큰 고난이었습니다.
약 20년 전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다뤄졌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얼마나 모진 모욕과 멸시, 육체적 고난을 당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당하셨던 모욕과 고난은 무엇입니까?
인간을 판단하고 처벌하는 절대적 권한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인간에 의해 판단당하고 처벌당하십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시고, 조롱 당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몸에는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그 육체적 고난은 실로 큰 고난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죽을 십자가를 직접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셔서 못박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인간에게 받은 고난이었습니다.
보십쇼. 예수님의 생애는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게 대접 받아야 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생애가 고난이었습니다.
2. 하나님에게 받으신 고난 : 버림받음
그러나 여러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표현되지 않는 예수님이 받으신 심각한 고난의 측면이 있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이 측면을 잘 표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당하신 영적인 측면의 더 깊은 의미의 고난을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 고난을 담담한 어조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상당히 객관적으로, 그 사실만을 명확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 성경의 어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예수님의 감정이 상당히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고난은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 받으신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그곳에서 죽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세상 모든 죄를 지신다는 것이죠. 그 십자가에서 지신 죄는 이 세상 모든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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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시작했을 때, 그 골고다 언덕은 이전에 없었던 “영원한 관계의 단절”이 일어납니다.
영원한 관계는 무엇일까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이 “관계성”이라고 제가 얘기한적 있습니다.
영원한 관계란 하나님의 세 위격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번도 단절된 적 없었습니다.
그 관계는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서로를 내어주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단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모든 죄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죄를 지신 순간 하나님의 속성에 없는 그 죄를 지게 되고,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영원한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예수님이 받은 가장 큰 고난은 무엇일까요?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관계의 단절이었습니다.
성경은 육체적 고난을 묘사하는 것에는 상당히 담담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아버지-아들의 관계에서 단절의 고난을 묘사할 때는 예수님께서 느끼신 어마어마한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4:33–36 (NKRV)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이 심히 놀라고 슬퍼하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고 슬퍼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게 될 때 시작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내게 옮기시옵소서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난의 사역을 피하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46 NKRV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결국 아버지 하나님께 정말 버림받으십니다.
영원히 사랑했던 그 관계가 단절되어버립니다.
다른 고난은 다 이겨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그 고난만큼은 예수님은 피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난 속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외면하시고, 그를 철저하게 버리셨습니다.
3. 고난의 이유 : 사랑 (이승구 146p)
그렇다면 예수님은 대체 왜 고난을 받으신걸까요?
예수님이 고난을 즐기셨을까요?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그것에 응하시고 순종하신 것의 유일한 이유가 바로 “사랑”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실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낮아지시고, 인간의 몸을 취하심과 동시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기 전까지 받으신 모든 고난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는 고난을 즐겨 감당하셨습니다. 고난 그 자체에 즐겨 감당한 것이 아닌,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즐겨 감당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고난을 즐겨 감당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깊은가요?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포기하고 죄를 지실만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냐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나누시던 관계를 포기하실만큼 사랑하셨다라고 답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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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가장 큰 고난인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끊길 즐겨 감당하신 ‘사랑에 눈 먼 주님’입니다.
주 허리 거절의 창이 찔렸고
주 음성 왜 날 버리셨나요
인간을 지은 하나님이 인간 손에 죽으셨네
주가 싫어 멸시한 우릴 위해 죽임 당했네
무엇을 위한 사랑인지 무엇을 바란 희생인지
당신은 사랑에 눈먼주님
“겸손의 왕” by 천관웅
4.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의 고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받으신 고난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과 어떤 관계가 있게 됩니까?
먼저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면서 닥쳐오는 고난에 대해 참된 위로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 때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예수님이 사신 삶이 고난이었습니다.
그 삶을 따르는 자들은 그 고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진정한 위로는 예수님이 그 고난을 미리 받으셨고, 우리가 고난 받을 때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받는 고난이 내 개인의 고난이 아닌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한 고난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개인의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 교회를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고난에 참여한다면, 우리의 고난은 나의 고난이 아닌 교회를 위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이 됩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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